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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적 예술의 시도

종이보물상자 2022. 1. 15. 22:51



몸이 아픈
그 아이는
이제 시력마저 나빠져
눈앞에 가까이 있는
친구의 얼굴도
겨우 알아볼 정도였다.

그 친구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던
친구들은
아픈 친구를 위해
그 친구의 창문에서 내려다보이는
담벼락에
무엇인가를 그려주고 싶었다.

친구들은
아픈 친구를 위해
그 친구가 좋아했던
바다와 해변을
그려주기 위해

친구의 창문 밖
담벼락 주인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담벼락의
주인인
동네 할아버지는
그 친구들의
이야기를
듣고 흔쾌히
그 부탁을 들어 주었고

그 친구들은 일주일이 걸려서
친구의 창문 밖 풍경을
바다와 해변으로
바꾸어 주었다.




하지만
친구들은 그림의 전문가도
아니었고 그 큰 담벼락에
멋진 바다 그림을 그릴만한
소질도 없었기에

그 담벼락을 지나가던
마을 사람들은
완성된 그림을 보고
뭔가 비웃는 눈치들 이였다.

그림을 못 그렸다는 말
이게 뭘 그린 거냐는 말
초등학생이 그려도 이보다 잘 그릴 거라는 말 등등

아픈 친구를 위해
일주일이란 시간을 바쳐 친구들이
그린 그림을 세상 사람들은
비웃었던 것이었다.

아픈 친구는
몸이 더 안 좋아지고
시력도 더 나빠져서

이제 거의 앞이 잘 보이지
않게 되어
바다에 갈 수 있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바다가 보고 싶어도
바다로 갈수 없는 친구의
버킷리스트를

그의 친구들은
직접 바다를
친구의 창문 앞 담벼락에
그려주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마을 주민들은
급기야 마을의 미관을 해친다며
그림을 그리게 허락해 준
할아버지를 비난했지만

그 할아버지는 주민들의
항의에도
침묵하셨다.

그리고
몇 주 후
아픈 친구는
하늘나라로
떠나고

그 친구의 어머니께서
먼저 떠난 친구가 남긴 말을
마을 주민들에게
말해 주었다.

몸이 아파 여행을
갈 수조차 없었지만
내 인생 마지막 이 주 동안
창문을 열어서
바다를 볼 수 있어
너무 행복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마을 주민들은
숙연해졌고

그 일을
가능하게 허락한
할아버지와 친구들에게
미안했던지
말이 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이런 담벼락의 그림은
미술을 전공하지 않은
일반인 학생들이
몸이 아픈 친구를 위해
희생한 서투른 사랑의 표현이자
자기희생적 실천이라 생각한다.

인문학적 미술의 시도
이런 것이 그런 경우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자 누구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에서도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를 위해
희생하며
서투른 벽화를 담벼락에
그려나간다면

그 벽화를 보는
누군가는 위로와 희망을
가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직도 꺼지지 않은
작은 불씨인
인문학적 예술에 관한
나의 시선은 유효하다
말하고 싶다.


인문학적
예술의 실천은
항상
우리 곁에서

누군가의
작은 희생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게
현실의 담벼락 위에
바다를 보여줄 수 있다는
사실에

희망을 가져 볼 수
있다는데에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다 하겠다.